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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영광, 그리고 오늘의 과제
독립유공자의 삶과 대한민국
작성일 : 2025-09-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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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 활동을 통해 만난 독립 유공자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스치는 장면은 굽은 어깨와 느린 걸음이다. 긴 세월이 몸에 남긴 흔적들은 분명했지만, 이야기가 독립의 시절로 향하는 순간 그분들의 눈빛은 서늘하게 맑아졌다. 쇠길처럼 단단한 의지, 벼락처럼 번쩍이는 판단력, 동지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어가던 기억의 강은 늙음을 잠시 잊게 했다. 그 앞에서 필자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독립 유공자이셨던 외할아버지의 사진 속 젊은 얼굴과, 오늘의 노년을 견디는 이들의 얼굴이 겹치자, 마음은 숙연해졌다.
우리가 그분들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봉사 현장에서 던진 이 질문은 단지 감상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바친 것은 시간과 노동만이 아니었다. 국가라는 공공의 이름을 위해 개인의 청춘과 가족의 평안을 기꺼이 내어놓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방식으로 그 선택에 응답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자유와 영광’이라는 커다란 가치의 언어와, ‘잃어버린 청춘’이라는 구체적 현실의 언어로 동시에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지원의 언어는 생활의 언어여야 한다. 보훈 정책은 기념식장의 수사로 완결되지 않는다. 의료와 주거, 돌봄과 이동, 문화 접근성은 노년의 삶에서 곧 존엄의 이름이다. 생활 보조금의 현실화, 장기 요양과 방문 의료의 연계, 주거 환경 개선과 무장애 이동 동선 확보는 추상적 ‘존중’이 구체적 ‘생활’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생활 동반’ 모델—지자체, 의료기관, 시민단체가 돌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기적 건강 점검과 비상 연락 체계를 운영하는 방식—은 예산의 효율성과 체감효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둘째, 기념의 형식은 참여의 경험이어야 한다. 독립운동의 서사는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서만 숨 쉬지 않는다. 학교와 마을 도서관, 청년 커뮤니티에서 구술 기록 프로젝트를 상시화하고, 지역별 ‘기억 걷기’와 생가·거점 연결 코스를 만들어 시민 누구나 걸으며 배우게 하자. 디지털 아카이브를 개방형으로 구축해 사진, 편지, 판결문, 지도의 원문을 누구나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역사는 강의실을 넘어 삶의 플랫폼으로 확장될 것이다. 참여는 곧 소유이며, 소유은 책임으로 이어진다.
셋째, 영광의 배분은 상징을 넘어야 한다. 서훈의 확대나 기념일의 지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분들이 살아온 동네가 더 많은 영예를 누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독립 유공자 거주지 표지와 함께 동네 역사 지도, 상권과 연계한 ‘기억 우대 상점’ 프로그램, 마을 축제에 ‘청년 해설사’가 참여하는 방식은 영광을 지역의 자부심과 경제적 순환으로 번역한다. 영광이 한 사람의 훈장에 머물 때 역사는 멈추지만, 동네의 자산이 될 때 역사는 다시 걷는다.
넷째,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남겨진 과제를 직시해야 한다. 자유는 자동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매일 갱신해야 하는 약속이다. 표현의 자유와 토론의 윤리를 지키는 일,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생활 정치에 참여하는 일,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는 연대의 실천은 모두 ‘독립’의 현대적 번역이다. 기술의 발전이 여론을 왜곡하기 쉬운 시대일수록 사실 검증과 책임 있는 발언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내일의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숙제는, 과거의 용기를 오늘의 제도로, 오늘의 제도를 내일의 문화로 이어 붙이는 일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느 어르신은 “우리는 젊음을 잃었지만, 당신들은 미래를 잃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독립은 이미 완성된 지난날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으로 계속 갱신되는 공공의 업무라는 뜻이다. 봉사단의 작은 손길은 그 업무에 참여하는 첫걸음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오늘 가족과 지역, 학교와 직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 하나를 정한다면, 그날은 다시 독립의 날이 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는 그분들의 이름을 얼마나 자주 불러보는가. 사진 속 흑백의 미소에 마음이 머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미소가 우리에게 맡긴 과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유와 영광은 추모의 화환이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굽은 몸에도 꺾이지 않았던 눈빛을 기억하며, 우리는 다시 약속한다. 잃어버린 청춘을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그 약속을 제도의 언어와 생활의 실천으로 끝까지 구현하겠다고.
3.1정신은
<자유, 평등, 평화, 공생, 공존, 인류의 행복을 추구 합니다.>
작성일 : 2025-09-06 15:37 / SIC 조신영 기자(junamo443@naver.com)






